미래를 상상하고 혁신의 가치를 만들어 가는 기업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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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상상하고 혁신의 가치를 만들어 가는 기업가의 꿈
  • 이성우 전문기자
  • 승인 2020.06.16 0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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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혁신 기업을 통한 새로운 가치를 만나다.
테라로사 김용덕대표이사와 본사 집무실에서

미래를 상상하고 혁신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기업가의
꿈은 다르다.(테라로사 리더와의 대화)

문화의 혁신 기업은 그 차이가 생각을 뛰어넘는다.
기업의 목표가 빅 컴퍼니 보다 큰 굿 컴퍼니이며 한국의 에레메스를 꿈꾸는 위대한 작은 거인을 만났다.

모든 건물이나 실내 디자인들이 아주 특별하다.마치 박물관이나 전시관을 찾아 작품들을 감상하는 기분이다.김용덕 대표는 건축학이나 디자인을 전공하지도 않았으나 인간내면의 공감을 끌어내는 공간의 전체적인 느낌을 연출하는 능력이 아주 탁월하다.

설계의 기본원칙은 엘레강스,우아함과 그 아름답고 미학적인 기법이 놀랍다.진정성,소박하고 겸손한 열정이 넘치는 거인의 눈빛엔 장엄한 희망이 느껴진다.

김 대표는 2002년 강원도 강릉에 테라로사 1호점을 낸 데 이어 작년 9월에 10호점인 부산점을 내면서 테라로사를 국내 명품 커피 브랜드로 키웠다. 매장 수는 적지만 내부 공간 미학, 커피 맛으로는 국내 최고로 꼽힌다. 200여명의 전 직원을 모두 정직원으로 채용했으며 4대보험 등 자녀교육, 복리후생 면에서 커피업계 최고 수준이다. 특히 테라로사 서종점(양평)은 지역 명소로 떠오르면서 주말엔 이곳을 찾는 고객들 때문에 교통 체증이 생길 정도다. 매출 역시 10개 매장 중 서종점이 가장 높다.

“서종점 자리는 처음엔 구식 한옥 형태의 식당이었는데, 내가 디자인을 새로 해서 카페를 열었다. 그런데 생각 외로 고객 반응이 좋아 카페 앞 땅을 추가로 확보해 건물을 새로 지었다. 지금 서종점은 신축 건물에 있다. 1, 2층 중간이 트여 있어 다른 커피숍들과는 공간 미학 측면에서 크게 달라 서울에서 오는 고객뿐 아니라 지역의 문화예술인들도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주변에 모텔들이 많아 분위기가 칙칙했는데 테라로사가 들어서고 나서 한결 밝아지고 서울 사람들로 북적대니까 지방자치단체가 모두 고마워했다.

강원도 강릉에 대해 가졌던 과거 이미지를 떠올려보면. 바다, 신사임당, 감자, 단오,,그 정도다. 지금 사람들에게 강릉에 대해 묻는다면 10명 중 8~9명은 '커피'라고 대답할 것이다. 카페거리를 중심으로 인구 22만 도시에 커피전문점 400여개가 성업 중이다.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의 걸작을 가능하게 한 '검은 액체', 바흐의 '커피 칸타타'에 영감을 준 '마법의 열매'. 대가를 더 대가답게 만들어주는 것, 그게 커피다. 커피 콩 한 알 생산되지 않는 강릉이 '커피의 도시'라는 근사한 칭호를 얻게 된 것은 이 사람의 공이 작지 않다. 김용덕 테라로사 대표(61) 그는 21년간 다닌 은행을 그만두고 마흔 무렵인 2002년 강릉에 커피를 볶는 공장을 열었다. 고급 커피 생두를 로스팅해 팔며 바리스타 교육도 병행했는데 그에게 배운 문하생들이 잇달아 카페를 창업하면서 강릉이 커피의 고장으로 변신했다.

테라로사는 강릉 시내에서 약간 벗어난 구정면 어단리에 둥지를 틀고 있다. 시내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오가는 외곽이지만 승용차나 택시로 이곳은 찾는 외지인은 갈수록 늘고 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커피향이 진동했다. 여기서 하루에 1.5t가량의 원두를 볶으니 그럴 수밖에. 카페, 로스팅 공장 옆 유리온실에는 제법 키가 큰 커피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카페 앞 작은 밤나무 숲 건너편으로 거의 공사가 마무리된 대형 붉은 벽돌 건물이 눈에 띄었다. 김 대표가 손수 도면을 그리고 3년째 짓고 있는 이 건물에는 카페, 레스토랑, 커피박물관, 도서관, 공연장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 일대가 그야말로 '테라로사 빌리지'가 되는 것이다. 메타세쿼이아 나무를 심어놓은 아담한 중정(中庭)에서는 야외 공연도 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이 꿈꿔온 가장 이상적인 '커피 왕국'을 이곳에 구현하겠다는 생각이 역역히 보인다.

 

그는 과테말라, 에티오피아, 브라질 등 13개국에서 연간 600t의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를 수입하고 있다. 스페셜티 커피란 생두 재배부터 로스팅 등 모든 순간에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서 만든 커피로 미국 스페셜티커피협회 평가에서 80점 이상을 맞아야 한다. 매장에서 취급하는 원두들은 산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고른 것들이다. 김 대표는 최근 피아니스트 손열음 씨와 르완다 산지에 다녀왔다.

김 대표를 6월 첫주에 테라로사 강릉본사에서 만났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군살 하나 없는 날렵함. 캔버스화를 신은 그는 테이블에 직접 올라가 벽 한쪽 책장 인테리어를 다듬고 있었다.

1990년대 그는 조흥은행에서 20년을 일했다. 복잡한 대출 업무에 빠삭했고 성실한 은행원이었다. 은행에서 인정받았고 특별한 잘못만 없으면 지점장 정도는 당연히 갈 수 있는 시기였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고 그는 1호로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어떤 특별한 이유나 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막연한 가슴 속 열망이었다. ‘한번쯤은 다른 것을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오후10시까지 은행에서 가장 바쁜 월 마감 업무가 끝나자마자 사표를 냈다. 누구와 상의하지 않았기에 말릴 틈도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강원도 속초에 돈가스집을 냈습니다. 자영업자로서의 시작이었죠. 자영업자로 겪는 모든 시행착오를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다 겪어봤으니까요.”

돈가스집 성적은 보통이었다. 별 준비 없이 뛰어든 자영업은 녹록지 않았다. 주방장 등 직원을 관리하는 것부터 음식의 맛까지, 넘어야 할 산들이 보였다. 자영업자로서 겪는 모든 고충을 경험했다. 손님이 뜸해서 기다려봤고, 적자에 허덕였고, 부도 위기도 두 번이나 있었다. 그때 깨달은 것은 좋은 재료를 쓰고 진심을 다하면 언젠가는 ‘핫’해진다는 것을.

그러다 당시 가장 핫하다는 서울 청담동 레스토랑을 돌았다. 그때 후식으로 나온 커피, 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음식과 커피는 ‘장난’이었음을 느끼는 첫 순간이었다.

당시 한국은 커피 맛의 불모지였다. 그는 2002년 강릉에 커피 볶는 공장을 열었다. 커피에 미쳐갔다. 자신이 이렇게 열정적인 사람인지도 커피를 통해서 알게 됐다. 당시 커피는 대부분 몇 곳 대기업에 의존하던 시기여서 좋은 커피 생두를 수입해 국내에서 볶는 김 대표의 커피 공장은 금방 입소문을 탔다.

첫 원두 납품처는 그에게 커피와 음식의 세계에 문화적 충격을 줬던 청담동 ‘안나비니’ 레스토랑이었다. 이후 특급호텔 등에서도 납품 주문이 이어졌다. 브라질어로 커피가 잘 자라는 ‘붉은 땅’, 그래서 희망 있는 땅이라는 의미의 테라로사. 강릉시 구정면의 이 커피 공장 겸 카페는 그 무렵부터 커피 애호가를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다.

2008년 어느 새벽=한국에서 커피 생두를 잘 만지는 공장으로 유명세를 탈 무렵 커피의 근본에 대한 궁금증이 밀려왔다. “세계에서 커피를 가장 잘 만든다는 곳은 어떤 맛을 낼까. 미국 3대 커피로 손꼽히는 인텔리젠시아 커피 본사를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2008년 어느 날 시카고에서 마신 인텔리젠시아 커피는 또 한번의 문화적 충격이었다.

테라로사는 매년 직원들을 해외연수를 보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브라질과 에티오피아 커피 농장, 가장 최근에는 프랑스에서 유명 카페와 미술관을 가보게 했다. 김 대표가 매년 해외연수를 준비하는 것은 그가 2008년 느꼈던 충격과 가슴 뛰는 일을 만날 기회를 직원들에게도 주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공간도 맛있는 곳=테라로사 매장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른 카페와는 뭔가 공간과 분위기가 다르다고 느끼게 된다. 그건 김 대표의 철학 때문이다.

“커피 장사보다는 문화가 되고 싶습니다. 공간 자체에 철학이 반영되면 이 공간을 찾은 고객들은 잠시라도 ‘힐링’을 느낍니다.”

강릉 테라로사는 미술관 같은 커피 공장이다. 에티오피아 국기에서 따온 색상으로 벽면을 채우고 세계 각국에서 모은 구형 그라인더, 각종 연장 등은 ‘공장’이라는 단어를 무색하게 한다. 테라로사는 천편일률적인 매장이 없다. 부산 수영점은 고려제강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그의 강릉 공장을 두 번이나 방문한 송영철 고려제강 회장이 그에게 인테리어를 맡겼다. 공장터라는 데 착안해 오래된 철판으로 커피바와 테이블을 만들었다.

 

포스코에서도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 로비에 ‘포스코다운’ 매장을 내달라는 의뢰가 왔다. 1층 높이가 6m가 넘고 2층도 4m 정도가 되는 압도적인 공간을 그 자리에서 연필 한 자루로 집중해 설계하고 그 자리에서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독학으로 공부한 설계와 건축을 이제는 유수의 기업이 먼저 알아보고 있다.

日 스페셜티 대부로부터 받은 e메일=테라로사는 세계 커피 애호가들에게 한국의 작지만 강한 회사로 통한다. 지난 연말에는 일본 스페셜티 커피의 대부로 꼽히는 하야시 히데타카씨에게 한 통의 e메일을 받았다. ‘커피 업계의 별이 돼줘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글로벌에서 테라로사에 보내는 관심이 커졌다. 테라로사는 해외 농장에 커피를 사러 갈 때 ‘체류에 대한 모든 비용은 테라로사가 스스로 지불한다’는 원칙을 지킨다. 남미의 커피 농장에서 한 해 몇십억원어치 원두를 사는 그는 그야말로 슈퍼 바이어다. 커피 농장들은 ‘갑 중의 갑’으로 통하는 해외 바이어를 최고급으로 접대하고는 한다.

테라로사는 2008년부터 콜롬비아, 브라질, 에티오피아, 케냐 등에 있는 커피 생산 농가와 직접 계약해 농가를 지속해서 지원해왔다. 양질의 생두를 국제 거래 가격의 최대 10배로 구매하는 방식으로 농가 소득을 올려준 것이다. 총 15개국에서 구입하는 스페셜티 커피 생두 규모만 연간 600톤에 이른다.

강릉에서 시작해 전국 14개 매장으로 회사를 키운 김용덕 테라로사 대표의 능력에 베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커피계의 애플’로 불리는 블루보틀이 한국 시장에 진출하는 등 커피 품질에 대한 소비자 눈높이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투자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2018년 매출액 333억원, 영업이익 71억원으로 실적도 양호하다. 테라로사의 점포당 매출은 스타벅스 점포의 2배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좋은 품질의 생두를 쓰면서도 이익률 20%를 유지하고 있으며 매출 비중도 매장(60%)과 원두·기획상품 판매(40%)로 고르게 분포돼 있다.

그의 꿈, 커피계를 넘어 식품계의 에르메스가 되는 것. 그는 “테라로사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음식을 먹는 것으로 행복감을 느끼고, 먹고 마셔서 살아 있는 게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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