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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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연습
  • 임기헌
  • 승인 2019.10.17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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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들의 죽음을 반추삼아 삶의 고민을 해볼 때

악플과 외로운 싸움을 벌이던 유명 아이돌 가수 설리가 결국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유명인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죽음은 저만치 멀리있지 않음을 다시한번 느끼게 됐고 삶의 허망함 또한 한번더 곱씹어 보는 번민이 교차하는 것만 같기도 하다.

생전 마주칠 일도 없었겠거니와 다만 설리(본명:최진리)라는 어린 친구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는 느낄수 있을것만 같다. 주위의 사람들 또한 살아생전 그의 온기를 받았는지 따뜻해 보였고 일면식도 없는 많은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함께 위로했다.

우리는 이따금씩 이런 이별이 익숙치 않아 참담하며 슬프다. 이산 가족 혹은 남녀 간의 이별 등 산 사람들끼리의 이별도 매한가지다. 살아서도 보지 못하는 꼴이니 죽은 사람처럼 자연스레 잊고살게 된다.

인생사 80년이라 가정한다면 필자는 딱 반을 살아온듯 하다. 그 중 아이덴티티가 흐릿했던 사춘기 전까지의 시간을 빼고, 60살이 넘어 몸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을 시간도 마져 뺀다면 우리 인생사 너무나도 짧아 보인다. 그렇다고 지금와서 할수 있는게 많아 보이지도 않는다.

머리가 굵어지니 죄다 자기 주장이 견고해지고 널리 주입을 시키려 바쁘다. 고집은 아집이 되고 객관성은 초점을 잃어간다. 뭐하려 이리 바삐, 아둥바둥 거리며 사나 싶은데 또렷한 목표의식도 사라진지 오래다. 게다가 멀쩡히, 온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는 유명인들의 죽음을 보고 있자니 인생무상(人生無常)이란 단어가 정곡을 찌른다.

내일은 뭔가를 더 열심히 해야될거 같은데 한걸음씩 다가오는 죽음을 생각하면 뭐가 옳은 선택인지 의아해 지기도 한다. 아침이 밝아오면 생각할 틈도 없이 일상에 타협하는 멍청이가 되어 있을게 뻔한데, 새벽녘 실 없는 잡념이 들고 말았다.

각설하자면, 우리는 언제고 필연적으로 이별을 할텐데 그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거다. 남은 자들의 삶이 피폐해지지 않도록. 이상하리만큼 자연스럽다면 더 좋겠다.

야밤에 한번쯤 사색을 하며 극단적 가정을 들어 그 상상에 현실을 주입해 보는 건 어떨까. 내가 죽으면, 혹은 당신이 죽으면 그날의 하루는 어떨지, 혹은 내 남은 평생은 어떨지, 하며 '이별 연습'을 해보는 것.

결국은 풍요롭거나 혹은 거지 같거나 한들 살아 숨쉴날은 정해져 있고 사후 세계는 알 길이 없으니 살아있는 우리 모두는 마치 '억울한 시한부' 인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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