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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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에게
  • 임기헌
  • 승인 2019.10.3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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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물결이 요동치던 1982년에 태어난 필자와 동시대를 살아온 지영씨!! 여성으로써의 삶은 가히 어땠을지 추측은 해볼지언정 내면의 공감대는 현시대의 젠더갈등 만큼이나 첨예한 문제로 남아 있으리라 사료되어 조심스럽게 운을 띄워 봅니다.

지영씨와 제가 7살 되던 해에 동방의 자그마한 이 나라에서는 전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이 열렸더랬죠. 한국인의 기개라고도 할 수 있는 호랑이를 본 뜬 마스코트 '호돌이'가 출연해 팡파르를 울리고 개막식에서는 굴렁쇠를 굴리며 등장한 한 어린 아이가 전세계 이목을 집중 시키며 그 시작을 알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것 같습니다.

이후 정치적으로는 군부 독재 시대가 막을 내리며 본격적인 민주화 시대가 도래했었지요. 그에 반해 우리네 가정에는 가부장적 문화가 계속해서 뿌리를 지탱해가며 그 본거지를 넓혀가고 있었고요.

기억합니다. 필자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 문화의 속성이 깊숙히 몸에 배어 당연히 그런줄로만 알고 살아 갔습니다. 남성은 바깥 일, 여성은 집안 가사와 육아의 공식이 지금처럼의 대립은 커녕 당위성만 부각 되었었지요. 그래서 현시대에도 보통 남편은 바깥사람, 아내는 안사람이라는 표현이 공공연히 쓰이고 있고요.

이 문화는 먼 과거에서부터 차곡차곡 축적이 돼 견고한 철옹성 처럼 굳건히 형성돼 그 어떤 이도 무너뜨릴 재간이 없었습니다. 현시대에 지영씨가 나타나기 전 까지는요.

이후 우리는 1997년 말 무렵 IMF 사태를 맞이하게 됩니다. 당시 지영씨와 저는 고등학생 무렵이였겠군요. 나라와 기업은 줄도산을 하고 당시 필자의 삼촌은 대기업에서 쫓겨나다시피 해고를 당해 당장 오갈곳 없는 신세가 됩니다. 필자의 삼촌 뿐만 아니라 당시 기업을 다니고 있던 많은 회사원 분들이 비슷한 처지를 겪게 되었었지요.

아마도 이 사태를 기점으로 제가 앞서 언급한 공식이 시들어지게 된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안사람, 즉 아내들도 바깥 생활 전선으로 뛰어들게 된 계기 말이죠. 이 후 국민들은 저마다 장농속에 보관해 두었던 금을 과감히 나라에 내놓았고 결사항전의 정신으로 허리띠를 졸라매 IMF 사태를 조기에 졸업하게 됩니다. 국제적으로도 전례가 없는 빠른 졸업이였지요.

이제 밀레니엄 시대라 불리우던 2000년이 왔습니다. 저와 지영씨는 대학을 들어갔고, 저는 1학년을 마친 뒤 바로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죠. 4계절이 두번 돌고 다시 겨울이 찾아오고 나서야 저는 제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 함께 입학했던 여성 동기들은 모두 졸업을 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매진하고 있었지요. 아마도 취업이 워낙 잘됐던 터라 평균 이상의 학점이면 마음 먹은데로 골라서 직장을 갈 수 있었던 시기였던것 같아요. 제 말이 맞나요, 지영씨?

그 뒤로 저는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스펙을 축적하기 시작했었지요. 한 해, 두 해가 지나고 졸업반이 되었고, 어느 순간 지영씨와는 사회적 격차가 꽤 많이 벌어져 있었고요. 그리고 웬 걸, 졸업을 앞두고 나니 기업들의 해외 이전과 취업자 수의 포화가 도래 돼 취업이 잘 되지 않습니다. 개인의 실력탓은 차치 하더라도 취업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대학생 수와 기업들의 채용 규모가 반비례를 이루기 시작했었지요. 급기야 학생들은 '할거 없으면 해야지'라는 마인드로 평가절하 했던 공무원 시장으로 몰리기 시작 합니다. 지금은 '벼슬'로 우대 받는 공무원 직군도 이 시기에 발현됐던 것입니다. 저는 운좋게 취업에 성공하게 됐지만 취업이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게 얼마나 고되었던 지요.

자, 이제 취업을 하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써 역할을 하고 있을 즈음, 결혼이라는 제도권 문화가 지영씨와 저를 옥죄어 옵니다. 지영씨도 그 문화를 거스를 수 없어 아마도 적절한 시기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된 것이겠지요. 아 참, 지영씨도 혹시 결혼 전 남자는 집과 자동차, 그리고 직장과 연봉. 이 조건들을 꼼꼼히 따지셨는지요? 저는 서울에 살며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제가 초봉이 3,000만원 이였으니깐요, 따져보자면 이 돈으로 데이트며, 차며, 집이며 이 모든게 어떻게 가능할지 말이지요. 이 중 하나라도 결여되면 '루저'로 취급받는 이 피해의식은 비단 저만이 느끼는 감정일까요? 여성으로써, 그리고 82년생 김지영으로써 82년생 남성인 저한테 해줄 조언이 있다면 어떤것들이 있을까요.

그렇게 대부분 대출을 받아 집장만을 하고 이제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때부터 겠지요. 직장에서의 갈등과 가정내에서의 끝없는 피해의식을 호소하는 시기 말이죠. 그렇다면 지영씨는 뭐가 그렇게 억울한가요? 경력단절? 집안일의 참여 비율? 남들은 죄다 잘사는거 같은데 거기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혹시 이런것들에서 오는 피해 의식 인가요?

지영씨, 저도 지영씨와 함께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 입니다. 군대에 입대해 허송세월 2년2개월을 날려버린 듯한 허무함, 계속되는 취업의 낙방, 전재산을 끌어모으고 전력을 다해 대출을 받아도 턱도 없는 아파트 전셋값, 이와 같은 굴직한 현실들을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지영씨의 마음속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피해의식 같은 것들도 그 결이 저와 다를 바 없겠지요.

그래서 지영씨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어요. 당신은 결코 이 사회의 피해자가 아니랍니다. 우리가 보듬고 함께가야 할 당당한 '82년생 김지영' 이란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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