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매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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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매너
  • 임기헌
  • 승인 2020.11.28 2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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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어떤 매거진에 <이별의 매너>라는 제목으로 작은 에세이 형식의 글을 실었던것 같다. 이론으로 알고있던 이별과 우리가 직접 마주하는 이별의 간극을 지적하고 싶어 경험을 최대한으로 빗대 글로 우려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몇년이 흘렀고 나는 '이별의 매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세상 새로울 것 하나 없다"라고 지적한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결국 남자건 여자건 매한가지라는 단순명료한 전제로 남녀관계는 정의 되기도 한다.

크게는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과 후로 이별의 반향도 달라졌던게 아닌가 싶다. 스마트폰이 있으니 톡 메세지나 SNS 등을 이용해 별도의 경제적 비용 소모도 없이 사랑하는 이들끼리 폭넓게 애정을 주고 받을 수 있다. 함께 사진을 찍어 마구 공유하고, 어느때고 메세지를 퍼나를 수도 있다. 메세지를 읽었는지 안읽었는지 관찰 또한 용이하다보니 우리 삶의 편의는 엄청나게 진일보 한거나 진배 없어 보인다. 

그러다 불현듯 어떤 사건의 발달로 다툼이 시작되고, 작은 다툼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일로로 치닫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 이제 그만하자"라는 말과 함께 그 누구라고 할것도 없이 톡부터 차단하고 SNS 관계를 끊기 시작한다. 재회고, 화해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매일 매순간 붙잡고 있는게 폰이다 보니 폰 속의 관계를 끊으면 내가 그 관계의 상위 어딘가를 먼저 선점하는 기분이 들어 서로 경쟁하듯 먼저 그 조치를 취하려 든다. 어떤 괘씸죄를 물어서라도 상대를 단죄하고 싶은데, 관계 네트워크의 홍수 속에서 '차단'만큼 그 효과를 톡톡히 보는게 없음을 그들은 잘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를 안달나게 만들면 그만큼의 승수효과가 본인한테 쌓이나 보다. 

그러다 3~4일이 지나면 본인도 궁금한지 차단을 슬쩍 푼 후에 상대방의 동태를 살피기 시작한다. 혹시나 날 정말 잊은건지, 혹은 그 사이에 다른 이성이 생긴건지, 등등 쥐잡듯이 파헤쳐 상대방의 톡 프로필 상태나 SNS를 훑는다. 보고 있자면 '참 쇼를 한다...' 라는 생각 뿐이다. 10년전의 그들이나, 5년전의 그들이나, 오늘날이나, 연인들 모두는 헤어진 다음 이 쇼를 하고 앉았다. 예외는 없다. 나는 언젠가는 예외적인 특별한 한 사람(Special One)이 분명히 존재하리라 기대했는데 10년이 지나도 매번 똑같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 똑같은 사고와 습관들을 가진 채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아무렇치 않게 이별을 하는 것이다. 이해나 배려, 대화 따위는 사랑하는 과정에서나 필요한 말이지, 이별 후엔 손바닥 뒤집듯 모든 약속과 달콤한 말들은 무용지물이 된다. 

사랑의 감정이 최고조에 달할 땐, (1)'엄마 보다도 오빠가 좋다'라고 고백하기도 하며, (2)'오빠 없으면 나도 죽을거야'라고 애교 섞인 협박도 하며 별 미사여구를 다 갖다 붙힌다. 결국엔 우리는 이별을 하고 서로의 이름도 잊어버렸는데 말이다. 아무리 인간이라지만 사랑의 테두리 안에만 들어가면 왜 그렇게 간사해지고 망각이 심해질까. 

단순하게 내가 '사막의 물한컵'이라면 그들이 사막에서 날 버렸을까? 구질구질하게 변명을 찾으려고 하지 말자. 모든 이별은 절실하지 않아서 헤어진것 뿐이니 말이다. 그리고 더 구질구질하게 이별 뒤 연락이나 정보의 차단을 활용해 애간장 녹이며 장난치듯 상대를 짓누르려는 나쁜 매너도 고치자.  

올해 한장 남은 달력. 주마등 처럼 지나간 애꿎은 세월들. 굳이 차단 따위를 안해도 살아갈 날이 별로 많치 않아보인다. 자연스레 삶이 다하며 이 세상과 차단이 될터인데, 인위적 차단은 이별 후 만큼은 잠시 자제해도 될 일이다. 이별의 매너가 여전히 아쉬운 2020년의 가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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